이집트 왕 바로는 백성을 선동합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며 닥쳐올 위험을 경고합니다. 즉 노예들의 세력이 커지면, 나라 밖 다른 세력들과 연합하여 자신들을 침략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독재자들의 통치 방법입니다. 정권이 불안할 때 안보로 위협하여 백성을 강력하게 통치하여 정권을 안정시키거나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국가 폭력은 여기서 등장합니다. 심지어 적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노예가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왕은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라고 거짓 선동합니다. 안보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아직 안정되지 못했고, 자신의 통치 아래 백성을 장악하기 위해 이런 수법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노예들을 신중히 대해야 한다고 합니다. 9절의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지혜롭게 하자’는 뜻인데, 그 지혜란 폭압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정권의 안정과 강화를 위해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죠. 이 시대의 우리 역시 폭력을 겪었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도, 그 역으로 유대인의 팔레스틴 학살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독재자들의 끔찍한 지혜입니다. 미얀마 군부와 아프카니스탄 탈레반의 탄압이 거세집니다. 이런 국가 폭력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모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