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지혜는 강제 노동으로 억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곡식을 저장하는 비돔과 라암셋 건설에 끌려 나갔습니다. 그래서 강제 노동으로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강제노동으로 이스라엘을 억압하면 할수록 반전이 일어납니다. 억압을 받을수록 이스라엘 자손은 번성했습니다. 인간의 ‘억압의 지혜’에도 붇구하고, 약한 사람을 더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 지혜의 기준은 생명 존중입니다. 마침내 바로는 두 히브리 산파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이거든 살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남자 아이들을 죽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두었습니다. 바로가 두 사람을 문책했습니다.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그들은 대답합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달리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습니다”. 두 산파의 이름은 십브라와 부아인데 그 이름의 뜻은 각각 ‘아름다움’과 ‘찬란함’입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저지르는 폭압이라는 지혜를 ‘아름다움’과 ‘찬란함’의 지혜로 이겨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힘없고 비천한 히브리 산파를 세우셔서 강력한 바로의 폭력을 비껴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할 것입니까? 바로입니까? 하나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