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기]
예수님이 군사들에게 잡히시던 그 순간, 옆에 있던 제자들 중 한 명(요 18:10)이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칼 한자루 가지고 싸움에서 이기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지만, 칼로 무장한 군사들에게 칼로 저항하는 그 자체로는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칼을 도로 집어넣으라고 말씀하신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기 때문이다. 칼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칼을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호하여 붙잡히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얼마든지 하늘의 군사를 보내줄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구하지 않으셨다.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가셔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붙잡힘이고, 체포는 곧 십자가의 죽음이다. 자신이 죽는 것은 결국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안일과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셨다.
사람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 이 두 가지의 갈등을 우리도 가끔 혹은 자주 경험하게 된다. 위급하거나 힘든 일을 당하게 되면 가장 먼저 사람의 방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찬찬히 하나하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한 행동이 매우 중요하고 마땅히 해야 할 지혜로운 처리 방법인 반면에, 사람의 방법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람의 위기 해결 방법이 아무리 효과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부분적인 해결일 뿐이다. 하나가 해결되면 그와 유사한 문제가 다시 또 발생하곤 한다. 위기를 대처하는 근본 방법을 터치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목마를 것이다. 우리에게 궁극적인 희망은 오직 인간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이 명확한 사실을 붙든다면, 우리는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불합리해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많은 경우 더 손해를 보거나, 상황이 나빠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방법을 따르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며 의지할 것이 세상에 없어서도 아니다. 나에게 물질이 있고, 건강이 있고, 소위 말하는 세상적인 ‘빽’도 있지만, 우리에게 궁극적인 희망을 안겨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방법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님처럼 아픔과 손해와 상처를 줄지라도, 결국 최후 승리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나의 내면 살피기]
오늘 본문과 묵상을 다시 점검하고 묵상 포인트를 살피면서 ‘하나님의 방법’과 연결하여 나의 내면을 잠시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