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이려고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진리”를 증언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성난 어조로 고함을 질러댔던 많은 무리는 진리에 대해 아예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종교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저 무지했던 것이다. 반면에 정말로 진리를 외면한 자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은 전통과 관습과 유전(유대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해석해서 만든 규칙)을 진리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당연히 그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들은 종교적인 규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기들을 종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자유인과 종의 진정한 의미와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이 그토록 간절하게 전했던 진리를 발견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유하게 하는 말씀이 갖는 진리를 외면한 채, 파편화된 진리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 사고방식, 취향이 진리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며, 그것은 고리타분한 옛날이나 가능한 골동품과도 같은 것으로 여긴다. 예수님 당시의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 즉 아브라함의 유전을 끔찍이도 소중히 여기며, 마치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커다란 죄를 짓는 것과 같은 억눌림에 매여 자유함을 누리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생각, 사고, 생활방식, 행동 양식, 가치관, 유리관 등으로 인해 너무나 과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대이든 오늘날이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이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곧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처절하게 죽어가신 예수님이 보여주고자 하셨던 영원한 생명, 부활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영원한 진리와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가? 만일 찾았다고 가정한다면 그 진리대로 살아가고자 몸부림 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을 앞에 놓고 깊이 성찰해야 한다. 빌라도는 예수님 앞에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러한 원초적인 질문과 함께 진리대로 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나의 내면 살피기]
오늘 본문과 묵상을 다시 점검하고 묵상 포인트를 살피면서 ‘진리에 속한 자’와 연결하여 나의 내면을 잠시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