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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8(금) 고통 속의 탄식, 죽음의 세계를 동경함 이름 최진무 (cjm0310)
날짜 2022년 03월 18일 15시 10분 54초 조회 96

욥기 3 : 11~26


탄원의 질문 3:11~19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왜 빛과 생명을 주셨는가 3:20~26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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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의 질문 3:11~19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부르짖음은 ‘나’를 알아 가는 여정의 첫걸음입니다. 욥은 ‘탄원의 질문’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어찌하여’(11~12, 20절)는 탄원시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시 10:1; 22:1 등). 그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편안히 안식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서로 다른 지위를 가졌던 이들(왕, 모사, 고관)이 죽음의 세계에서는 모두 동일한 안식을 누립니다. 그곳에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고, 피곤한 자가 쉼을 얻습니다. 갇힌 자가 평화를 누리고, 큰 자나 작은 자가 같아지고, 종이 상전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욥이 원했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 누리는 안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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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묘사하는 죽음의 세계는 어떠한 곳인가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여겨질 만큼 힘들 때 나는 주로 어떻게 행동하나요?


왜 빛과 생명을 주셨는가 3:20~26

죽음의 세계는 안식과 평화가 있지만, 현실 세계는 고통과 수고가 가득합니다. 욥은 피하고 싶은 현실 세계를 마주하며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20절)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는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의미를 묻는 탄식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이중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한편으로는 욥에게 빛과 생명을 주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둘러싸시며’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23절). 욥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에 의해 봉쇄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 상황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모순된 행동으로 인해 욥은 ‘불안’ 가득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안정과 질서는 사라지고 무질서와 혼란의 파도가 욥을 엄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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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느낀 하나님의 이중적 행동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때로는 복을, 때로는 환난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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