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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4(목) 고통 중 가장 큰 기쁨,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것 이름 최진무 (cjm0310)
날짜 2022년 03월 24일 14시 42분 01초 조회 95

욥기 6 : 1~13


탄식에는 이유가 있다 6:1~7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주시기를 6:8~13

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12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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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에는 이유가 있다 6:1~7

잘못된 충고는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더합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괴로움’(2절)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아스’는 엘리바스의 발언에서는 ‘분노’(5:2)로 번역되었습니다. 엘리바스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인다며 분노를 그치라고 하지만, 욥에게 그것은 ‘괴로움’일 뿐이고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정제되지 않고 경솔할(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공격으로 여깁니다(4절). 전능자의 독화살을 맞고 두려움에 사로잡혔기에 자신의 탄식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싱겁고 역겨운 음식은 먹기 어렵고 만지기도 싫듯(6~7절), 욥의 고난은 욥이 생각하기도 싫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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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바닷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강도는 어떤가요? 고통 때문에 내게 거친 말을 하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내가 바라는 것을 주시기를 6:8~13

욥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8절).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음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안식입니다. 10절은 난해 구절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죽음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내게 위로가 될 것이다. 나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텐데, 그 이유는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회개 대신 하나님께 탄식하고 질문하는 길을 택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엘리바스의 충고를 완전히 거부하는 셈입니다. 욥은 더는 버틸 힘이 없다며 죽음을 갈망하는 이유를 밝힙니다(11~13절).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응답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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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욥이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이었나요? 고통 가운데서도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확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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